서수남 나이 부인 아내 가출 이혼 빚 어머니 고향 딸 서민아 사망원인 서수남하청일

서수남 나이 부인 아내 가출 이혼 빚 어머니 고향 딸 서민아 사망원인 서수남하청일

서수남은 ‘세상에 이런 일이’에서 LP판만 수만 장을 수집한 한 할아버지의 사연을 목소리로 전하여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수남은 1943년 생으로 올해 나이 78세로 1992년에 데뷔해 현재는 가수와 강사, 사진작가 등으로 활동 중이다. 

 


서수남은 서울 출생이며, 충청남도 서천과 경상북도 달성과 경기도 이천과 경기도 포천과 충북 충주에서 잠시 유년기를 보낸 적이 있다. 

1962년 당시 라디오 방송이었던 MBC 문화방송 주최 콩쿨 대회에서 금상을 수상하며 솔로로 데뷔했다.

1969년 MBC <웃으면 복이 와요>라는 프로그램에서 하청일과 함께 '서수남, 하청일'로 가요계에 본격적으로 데뷔했다.

 

 

1970년에 <팔도유람>이라는 곡으로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졌고 1973년에 발표한 <수다쟁이>라는 곡은 당시 코믹송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었으며, 1975년에는 <과수원 길>이라는 곡이 유행하면서 교과서에 실리기도 했다.

 

 

 


'서수남, 하청일' 콤비는 TBC 방송대상을 수상할만큼 전성기를 누렸으며 60년대와 70년대 가요계의 한 획을 그은 그룹이라고 할 수 있다.

 


1988년에 서수남 음악학원을 설립하여 노래강사로 활약하기 시작하였고 1990년에 '서수남, 하청일'이 해체됐다.

 


서수남은 이혼과 사업 실패 등으로 굴곡진 삶을 살아왔는데 서수남 아내는 찾지 말아달란 내용의 편지를 남겨놓고 집을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서수남은 18년 전 아내가 가출했다면서 "아내는 모든 재산을 탕진했고 빚까지 10억을 남겨뒀다. 운영하던 노래교실에 채권자들이 찾아올 때까지 아내가 진 빚에 대해서 몰랐다"고 밝혔다. 

 


이어 "현금과 집이 날아갔다. 셋방을 얻을 돈도 없을 정도였다"며 당시 상황의 심각성을 전했다. 

또 서수남은 “이혼 당시 재산을 빼돌렸다는 루머로 더 힘들었다”며 “자살까지 생각했지만 26살에 과부가 되어 아들 하나 바라보고 살아온 노모 때문에 죽지 못해 살아왔다”고 고백한 바 있다.

 

 

서수남 어머니는 3대 독자인 서수남을 홀로 키워 오신 것이다.

서수남은 6년 전 KBS ‘여유만만’에 출연해 “어머니가 안 계셨더라면 아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라며 어머니에 대한 감사함을 전했다. 

 

서수남에게 설상가상으로 미국에 건너가 살던 그의 큰 딸이 그 곳에서 세상을 등졌다. 

 


딸의 마지막 모습에 서수남은 "딸이 남편과 별거하던 중 술을 많이 마신 것 같았다. 딸이 아프다고 병원에서 연락이 왔다. 위독하니까 빨리오라고 하더라. 위출혈이 있다고 해서 비행기를 예약해서 가려고 하는데 다시 전화가 왔다. 이미 세상을 떠났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어 "병원의 규칙대로 딸의 시신을 화장해서 유골을 보내달라고 했다. 유골이 화물 비행기로 오더라. 인천공항에 유골함을 받으러 가서 유골을 안고 왔다"며 "부모는 이런 경험을 하면 안된다. 마음으로 많이 울었다"고 밝혀 팬들의 마음을 안타깝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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